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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1월 2일자 칼럼에서 서배원 논설위원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제시한 일자리 해법은 유효하다며 실용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해 주목을 끌고 있다.
다음은 서배원 논설위원의 칼럼이다.
[경향의눈] 문국현의 일자리 해법은 유효하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의원직을 상실했다. 비례대표 후보에게 당채를 판 것과 관련해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실형이 확정된 결과다. 존경받는 최고경영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2년 만에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그가 정치 입문 이후 오늘에 이른 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정치 아무나 하나’라는 말처럼 한국 정치판의 진입 장벽은 높고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문 대표의 의원직 상실 소식을 접하면서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전도사를 자처했던 뉴패러다임 경영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유한킴벌리 사장 재직 중 그는 뉴패러다임 경영 모델을 확립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1년에 100회 이상의 강연을 소화하며 전국을 누볐다.
뉴패러다임 경영은 근로시간을 줄여 과로를 없애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며 남는 시간은 재충전 학습으로 활용해 개인의 역량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 모델이다. 물적 투자, 일 중심의 낡은 패러다임이 아니라 인적 투자, 일과 삶의 조화를 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삶의 질과 기업의 경쟁력을 동시에 높이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도 늘려 ‘3마리 토끼’를 겨냥한다.
뉴패러다임 경영 실증적 효과
한국 경제의 ‘고용없는 성장’을 우려하던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말 유한킴벌리의 일자리 나누기 모델을 높이 평가해 뉴패러다임 경영을 국내 기업에 확산시키기로 했다. 이듬해 4월 문국현 사장을 사람입국신경쟁력특별위원장에 임명하는 동시에 정부출연기관으로 뉴패러다임센터를 설치해 모델 보급에 나섰다.
하지만 기대만큼 보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추동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 없이 국책연구원의 일개 산하 조직에 이를 전담케 한 것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뉴패러다임 경영의 확산을 고용안정 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아 부처 중심으로 강력히 추진하고, 도입 기업에는 투자에 버금가는 법적·제도적 인센티브를 주었더라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뉴패러다임 경영은 정부의 관심권에서도 멀어졌다. 올들어서는 센터 이름도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로 바뀌었고 센터가 수행하는 여러 사업의 하나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나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고용없는 성장을 타개할 묘책이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내수를 확대하고 서비스업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정답이 정책 목표로 제시돼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지속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내년에 65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놨지만 상당수가 저소득층에 세금으로 돈 대주는 공공부문 임시 일자리다.
일자리 문제가 단기적으로 호전될 수 없음은 이명박 대통령도 인정하는 바다. 대통령이 기업에 투자를 늘리고 사람 더 뽑아달라 호소하고, 정부가 이리저리 닦달해도 수익성이 보여야 투자하고 채용을 늘리는 것이 기업이다.
추동력 갖추면 유효한 대안
일자리에 관한 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뉴패러다임 경영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카드다. 지금까지 이 모델을 도입한 기업의 종업원 수가 제조업은 35.9% 서비스업은 19.8% 늘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와 있다.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느냐의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불씨를 살려 일자리 대책의 중심으로 삼을 만한 자격은 충분하다. 인센티브를 비롯한 법적·제도적 추동력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참신한 맛이 없다 뿐이지 적어도 현대판 취로사업으로 일컬어지는 희망근로, 청년인턴 같은 임시 방편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효과적이며 근본적인 접근이다.
그래서 뉴패러다임 경영은 문국현 대표의 정치적 운명과 관계 없이 여전히 유효하다. 실증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야당 대표가 주창했고, 전 정권이 만졌던 카드라 해서 외면한다면 실용주의를 내건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 경향신문 <서배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