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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의원직 상실 당대표 사임한 문국현 前의원 “할 말 있소”
‘정치인 문국현’은 무대를 잃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이달 5일엔 창조한국당 대표직에서도 물러났다. 유한킴벌리 사장 시절 ‘창조적 최고경영자(CEO)’로 존경받고 2년 전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땐 ‘정치계의 신데렐라’로 불렸지만, 이제는 왕궁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유리구두와 호박마차까지 빼앗긴 신세가 됐다. 그런 문국현의 담담한 모습은 뜻밖이었다.

그는 감정이 읽히지 않는 표정으로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과거 깨끗한 이미지여서 공천헌금 사건이 더 충격적이다.
“이한정 전 의원이 공천헌금으로 돈을 내놓은 게 아니라 당의 공식 계좌를 통해 돈을 빌려준 것이다. 경찰이 공증한 자료를 믿어 그의 학력위조 전과도 몰랐다. 당시 나는 은평지역 선거에 나가 당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 돈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다. 당채를 1% 저리로 발행한 점이 유죄라는데 다른 당에서는 0% 이자로 당채를 발행해도 문제삼지 않았다. 처음 기소할 때는 이자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혐의가 모두 무혐의 처리되자 당채 이자율을 걸고 넘어진 거다. 검찰은 법관에게 범죄사실만 적은 공소장만 제출하고 유죄 심증 또는 예단을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이나 서류를 첨부할 수 없다는 ‘공소장 1본주의’도 어겼다.”
-이번 판결을 ‘정치적 살인’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재판의 핵심은 이 전 의원도 창조한국당도 아닌 ‘문국현 죽이기’다. 이 시나리오는 청와대 감독, 정치검찰 주연, 권력의 눈치보는 재판부의 조연으로 1편이 끝났다. 판결이 나자 한 당원이 2007년 3월 고 김상택 화백이 그린 만평을 보여주더라. 난 당시에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을 강력히 비판했는데 김 화백은 그 만평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권을 잡으면 손볼 대상 0순위’라고 내 운명을 예견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지 않았나.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에코 카운슬’을 만들어 청계천이 너무 인공적으로 가는 것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데 나뿐 아니라 최근 나와 비슷한 처지인 최열·박원순씨도 뜻을 같이했다. 서울숲도 그런 취지로 탄생했고 서울시 발전과 환경보호에도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시장 시절엔 귀를 열더니 대통령이 되어선 제왕주의로 변했다. 측근들의 경쟁적 충성심 탓인 것 같다.”
-기업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다는 견해가 많다.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저항이다. 에디슨을 보라. 그는 수만 번의 실패를 겪고도 좌절하지 않아 결국 위대한 발명과 발명품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했다. 링컨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다. 처음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숱한 좌절도 겪었지만 결국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위대한 정치가로 인정받았다. 나와 우리 당을 아마추어라고 평하는데 그건 그만큼 기득권과 관행에 찌들지 않은 신선한 정치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존경받는 기업가로 남을 수 있었는데 왜 정치에 뛰어들었나.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영향이다. 그분은 국민이 자기 머리에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민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자리를 얻고 싶다는데, 당시 한국 정치가 너무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람중심 진짜 경제’를 기치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일자리를 찾아 경제가 안정되면 저출산문제도 해결되고 고령화도 재앙이 아니라 무병장수의 축복이 된다.”
-대선 당시 야권 단일화를 거부했고, 창당 멤버들은 ‘독선적’이라고 비난하며 당을 떠났다.
“깨끗하고 신선한 정치인을 열망하는 이들이 나를 추천하고 지지했다. 다른 당의 지지자들이 나를 지지할 수는 있어도 나의 지지자들은 절대 과거 정권에서 국민을 실망시킨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거다. 꼭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 중산층을 위한 진짜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하는 것이 목표여서 정동영 후보 밑으로 통합하는 단일화는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당을 떠난 이들은 우리 당이 단 1명의 국회의원도 못 만들 것이란 판단에 자기 영달을 위해 떠난 거다.”
-창당 과정과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 100억원대 재산을 잃었다. 아깝거나 후회되지는 않나.
“자칫하면 그저 부유하고 성공한 부류 속에 갇혀 세상과 국민들을 못 볼 뻔했다. 정치를 하면서 전국을 다니며 국민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절박함을, 서민의 아픔을 공감했다. 참 많이 배우고 국민에 대한 관심과 사명감을 갖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당은 사법 투쟁에 집중하고 나는 일자리 창출 등 경제에 전념할 것이다. 모든 당직자가 사퇴하고 잘못된 법원의 판단을 바로잡으려 온 힘을 다하는데, 내가 거기 있으면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창조한국당의 핵심 가치인 지식경제, 사람중심 경제를 국제적 운동으로 이끌 구상도 하고 있다.”
-본래 긍정적인 성격인가.
“30여년간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등을 통해) 나무를 심어와서 그런 것 같다. ‘이 나무가 무사히 잘 자라겠다’란 믿음이 없이는 그토록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없다. 흙, 물, 공기가 힘을 합해 수십년이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나무 심기를 하다 보면 긍정적으로 변한다. 또 낙천적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경향신문 11월 11일자 <글 유인경·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